겨울은 언제나 봄을 품고

매운 바람끝에는 이미 봄이 숨어있으니

Archive for June, 2007

리눅스 월드 코리아 겸 SEC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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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쪽 부스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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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DP의 마스코트, foo 입니다. (pooh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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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관람하는 사람들과 부스들.
부스가 예년에 비해 많이 줄어서, 마음이 아프더군요……

리눅스 월드 코리아만도 한 전시관을 가득 채우던 시절도 있었는데. 두 행사 합쳐서도 그렇게 자리가 널럴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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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기자가 찍은 듯한 세이의 모습. (너무 구부정하고 새카맣게 나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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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햇 부스. 예전에는 올해의 아이리버 부스 만했던 것 같은데요……

아, 아이리버 부스는 올해도 누님들은 쭉빵하고, 볼거리도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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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스들이 있지만 그 사이사이 공간도 넓고….. 사람도 적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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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DP의 스티커와 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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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하고 나서, SUN의 무료교육을 다녀왔는데요. (중간에 세이군이 급한 연락이 와서 듣다 말고 나왔습니다만…..)
그 앞에서 찍었습니다. 테헤란로의 유래, 몰랐는데 아주 유서깊은 길이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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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면 무조건 유서깊은 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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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야말로 전인교육의 전당같다구 ^^

지금 제 뒤에는 알바냥 둘이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알바란 매일 와서 청소를 하고, 시키면 쓸데없지만 가져오라고 하는 것들의 타이핑을 치고, 가끔 교재 교정도 보면서 하루 한시간씩 꽉꽉 채워 일하고 가는 한편으로 태국으로 수학여행 갔다와서 태국산 뿌셔뿌셔 등을 가져오는 귀여운 애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여간 얘들이 시험공부 하는 것 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운동장에는 남색 체육복을 입은 애들이 줄 맞춰서 걸어다니지 않나.

애들 공부한다고 가져온 책은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시작해서, 그야말로 전 과목을 아우르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기 전공도 있어서 어느정도까지는 배우고요. 전인교육 전인교육 하지만 국어, 영어, 수학, 역사, 자연, 게다가 실과와 체육에 음악이라고 어디선가 리코더 삑삑거리는 소리까지 남의 애를 끊나니. 여기를 보지 않고 전인교육을 논하지 말라는 생각이 들 정도.

하여간 궁금한 것은, 교대 수학교육과 애들도 미적분, 대수, 선대, 토폴 등을 배울까 하는 것입니다만…..

언제 수학과 출신 알바냥이 오면 꼭 물어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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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실이 있어서 다행이야 >_<

아침에 출근하고 나서, 혹은 점심 먹고 돌아오고 나서
이 지긋지긋한 더위에 나긋나긋 녹아떨어질 때

에어콘 빵빵. 언제나 섭씨 18도에 습도 45%를 유지하고 있는 서버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_<

……뭐, 4층이라 사무실은 볕이 그냥 내리쬐는 쪽이라서 힘들다구…… 그런 거라도 있어야지. 난 대학때 사람 위에 서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니까. 젠장, 사람들 공부하는 강의실은 기본이 35도인데 서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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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변태 중년-_-;;;

오늘 그러니까 별님사랑 모임에 갔다가 미용실 들러서 머리 좀 깎고
기분좋게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웬….. 아마도 등산하고 돌아온 것 같은 아저씨 일행이 몇 타더니
그중 한 명이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경인고속도로를 빠져나올 때 까지 악몽의 연속이었다.

이 아저씨는 계속 남의 무릎과 허벅지에 손을 얹고, 남이 끌어안고 있는 가방에 기대어 쿨쿨 자더니
나중에는 소리를 지르고 가방으로 밀치고 때려도, 남의 무릎에 계속 손을 대는 것이었다.

게다가 내 뒤에 앉은 이 아저씨의 일행 두 명이, 내가 자꾸 소리지르고 참다못해 울어버리니까.
“아가씨 무슨 일 있어?”하고 말하는데
그게 사뭇 위협적이었다. 아, 시팔!!!!!!!

난 정말로, 경인고속도로 위에서는 움직이기가 어려운데다 자리도 꽉 차 있어서 견디다가
경인고속도로 끝나는 지점에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남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태들은 모조리 손모가지를 잘라도되는 법이 국회에 통과할 때 까지 여자 국회의원 후원금이라도 내야겠다, 씨발.”

참고로, 내 직장에는 언제나 남자(아저씨)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눈물나게 높다 보니.
저런 놈을 만나고 나면 보통은 한 사흘에서, 전에 지하철에서 엉덩이에 잔뜩 발기된 좆을 문질러대며 하악하악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도 못하던 놈 만났을 때는 장장 1주일까지, 직장상사의 말이 귓구멍으로 들어오지 않는 데 있다. (정말 그게 인간인가? 지하철 내에 변태들 잡는 경찰들도 돌아다닌다는데 나는 여자들 평균에 비하면야 변태도 별로 안 만나봤지만 그런 경찰은 더더욱 구경도 못해봤다.)

…….저런 새끼들은,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이 군대 가서 비누나 주웠으면 좋겠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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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스타일 사진을 찾아서;;;;

지난번 머리를 대충 깎으러 갔더니 바가지 엎어놓은 것 같은
우리동네 여고생들이 깎고 다녀도 너무 혐오스러운
1자도 아니고 가운데는 푹 패인 이상한 클레오파트라 앞머리 꼴을 내려고 해서 도망쳤던 전력이 있는지라.
게다가 아무 말 안 하면 학생인 줄 알고 이상하게 깎고
직장인이라고 했더니 아줌마….. 심지어는 박근혜 아줌마 스타일로 깎는 인간도 보았던 지라.

미용실 가기 전에 마음에 드는 헤어스타일 사진을 들고 가서 보여주고 깎으면 된다…..는 생활의 지혜를 배우고.
검색을 하였다.

……난 연예인 사진 필요없거든? 왜 “여자 숏컷 헤어스타일”로 검색하면 다 연예인이야?
난 그냥, 1980년대의 빌게이츠처럼
아주 짧지도 않고
헤어왁스 바르거나 잔손질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상하게 모양 내서 잘라서 공은 들인 것 같은데 자르고 나오는데 뒤에 머리 묶을 만큼 길이가 남지도 않는
딱 그런 스타일로 자르고 싶다 이거다.

근데 그렇다고 그 사진을 들고 가면 내가 변태가 될 것이니. 후우……

남자들은 좋겠다. 아니, 남자 직장인.

다니던 데 가면 똑같이 잘 잘라 주잖아?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조금 짧은게 좋은지 긴 게 좋은지만 말하면.
여자 헤어스타일 사진은 찾기도 힘들고……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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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 그러나 계산 후 남은 것은 T_T

마이너스 5만원. -_-;;;

아니,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단 나는 공제회에 30만원씩 넣고 있다.
만기되어 찾으면 반은 학비융자 남은것에 쓰고 반은 사용할 조로 적금 60만원이 들어가고.
(전 직장 다닐때 어느정도 갚았으나, 시험준비 및 기타등등으로 다시 마이너스가 났기 때문에…… 그리고 갚기 위해서. 만을 목적으로 부으면 아무래도 사람은 의욕이 안 나는 법이라서.)
여기에 야근수당은 무조건 펀드에 넣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만져보지도 못하고 쌓아놓는 돈이 월 100만원이다.

여기다가 핸드폰비 나가죠. 카드도 쓰죠.
이래저래 계산했더니 현금 100원 만져보지 못하고 계산 결과 적자가 마이너스 5만원이다. 그나마 아껴썼는데도 이 지경이다.

물론 야근도 좀 했고, 이번 달에는.
그리고 토플 시험 준비 같은 것 도우면 또 수당 나온다고 하지만.

다음달에는 좀 이 지경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결정적으로 얼마 전에, 2, 3일간 30만원 정도가 필요했었는데, 일반 통장에다가 돈을 안 넣어놓고 계산해서 남는 것 모조리 펀드에 넣고 넣고 넣고 했더니 30만원씩이나가 안 되더라. -_-+ 환매일 며칠 필요하니까 조금 곤란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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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두달 지난 남동생;;;

대략, 남자는 군대 다녀오고 직후에 군대에서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와, 자기들 군대 가 있을 때 공부해서 먼저 졸업하고 사회 나온 여자 동기들을 보면서 느끼는 좌절감으로 개마초화가 진행되는 것 같다. 물론 개중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취직 제대로 하던가 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마초는 마초이나 군대 문제로 찌질거리지 않는 보통의 20대 후반 내지 30대. 혹은 더욱 나아가 마초를 베이스로 깔고 있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이전에서 업그레이드 된 신사로 변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취직도 안 되고, 애인도 없고, 그렇게 좌절감이 쌓인 남자는 그게 점점 더 심해지기도 하더라.

반면 여자는, 대학때는 몇몇 여대 출신 말고는 그렇게 극렬하게 여권 따지는 것 같지 않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적어도 학교는, 남자보다 잘 하면 성적이 잘 나왔고(물론 교수 중에는 취직할 남자에게 점수 더 잘 준다는 그런 교수도 있었지만, 요즘 세상에 대놓고 그랬다가는 교수 자리 보전도 어렵기는 하지.) 성폭행이나 성희롱 문제 정도가 그 문제 제기의 전부였다. 여자가 제대로 벽과 마주하는 것은, 아마도 취업 과정, 혹은 취직을 한 뒤의 문제일 것이다.

사실 나야, 몇 안되는 여자친구들에게서는 오히려 너 벗겨놓으면 남자 아니냐는 말을 들을 만큼, 어쨌건 남자애들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친구들도 많고, 걱정도 해 보았고, 사회와 정부에서 제대로 보상해주지 못한 것을 두고 여자한테 돌리는 비겁한 놈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걔들 군대에서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고, 대부분의 남자는 잠깐 그러다가 만다고 단호하게 내가 아는 여자들에게 말할 수 있을 만큼은 남자 편도 들어주었다. 취직과 현실적 문제들 속에서 이런 것을 남자 군대가는 문제와 비교하지 않고 왜 하필 생리와 임신 문제만 예로 드는지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사실 내가 남자와 그놈의 군대와 생리 이야기 나오면 나는 오히려 취업과 직장 이야기를 하며 말문을 막아버리곤 했다. 아직도 꽤 많은 회사들은 군대 다녀왔다는 호봉을 쳐 주어서 곧 대리로 승진할 2년차 여자보다 갓 들어온 남자 신입사원이 더 월급이 많기도 하지. 부터 시작해서. 임신을 한 여자들이 일반 회사에서 대놓고 자르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교묘하게 치워지는지에 대한, 본 이야기와 들은 이야기들을. 문제는.

우리집에도 군대 다녀온지 얼마 안 되는 놈팽이 한 마리가 있다는 거다.

게다가 이 녀석 집에서 노느니라 요즘 디씨인사이드 같은 데서 놀더니 점점 더 페미니스트, 나아가 여자에 대해 안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거다. 너는 누나가 둘이요 엄마가 계시며 여친도 있는 놈이라는 것을 상기시켜도, “그 개고생 하고 머리는 돌대가리가 되어서 돌아왔는데 누나가 뭐 할말이 있어서” 급의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지. -_- 내가 그 취업 이야기를 해도, 이제 복학하면 2학년일 이 놈의 귓구멍에 그 말은 별나라 이야기처럼 멀기만 하다. 그런 주제에 꿈은 커서, 얼마전에 군가산점 부활 이야기 나오니까 왜 고시에는 가산점을 안 주느냐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_-+

……그래, 뭐. 세이도 처음 군대 다녀오고서 한달 정도는 좀 사회에 불만도 많았고, 멀쩡히 내 앞에서 여자가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하며 내가 반박하자 말을 탁탁 잘라 끊기까지 했다. 그래서 가방으로 후드려 패고 주먹으로 뺨따귀 한방 날려주고는 길 가다가 성희롱 당하면 세상이 서바이벌인데 당해봤느냐고 물어보니까 아니랜다. 그래서 붙들어놓고 이야기를 잘 했다. 그래도 저건 남자친구니 한 짓이지, 대략 군대에서 남자들만 모아놓고 2년동안 집 떠나 고생하니까, 한 100일 정도 군대 물 빠질 동안에야 친구놈들의 그런 소리도 들어는 줄 만 하다. 얼마나 답답하면 그런 하소연을 하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친구놈이 헛소리하는 것과, 동생이라는 놈이 나한테 그렇게 대드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것도 얼마전 여친이랑 1000일 되었다고 그래서 여친이랑 공연 보고 오라고 표 끊어줘 뭐 해줘 어쨌건 퍽이나 신경 써 주면서 휴가 나오면 용돈까지 꼬박꼬박 주던 누님한테 그러면 안되는 거지. 그래서 나는, 이 자슥이 지 누나한테 한 말을 그녀석 여친에게 그대로 일러바쳐줄까 하는 쪼잔한 생각부터 시작해서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다. 어쨌건, 남자건 여자건 어느정도의 승리를 거두면 더는 예전의 굴욕에 대해 하소연하지 않는 법이다. 그것이 군대가 되었건, 무엇이 되었건. 그래도 지하철 안에서의 성희롱은, 20대 후반이 되어도 잊을 만 하면 발생하는 일이며, 아무리 비교적 남녀가 평등한 공무원이라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비교적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 다 아는 이야기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그 비교적 평등하다는 공무원인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결혼해도 입시 기간에 애 낳으러 들어가지 마라”는 말씀도 들은 적 있으니까. (아니, 이해는 간다. 석달이나 비우면 그냥 비우는 것으로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업무 부하가 다른 사람에게 얹히기까지 하니 곤란하기는 하겠지.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조금. 그리고 남자에게 저런 말 하는 회사도 혹시 있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남자에게까지 애 낳는 시기 정하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사장이 문제겠지. -_-+) 그래도 말이야, 임마. 누님은 먼저 하소연하지는 않잖니? 세상에 태어나 잘 한 일이라고는 군대 다녀온 것 밖에 없는 남자가 와서 내 앞에서 심기를 긁어대며 지랄할 때 아닌 이상 내가 먼저 그러는 것 본 적은 있냐? 나도 모 여대에서 그런 퍼포먼스 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 여대 욕할 거고, 군대 제대한지 얼마 안 되는 아는 동생들이 으악 군대 힘들었어 내 청춘을 돌리도 하고 술 퍼마시면, 먼저 여자가 어쩌니 하는 뻘소리 하지 않는 이상 난 토닥토닥부터 해 주는 사람이었어. 너는 그 퍼포먼스 자체를 욕하는데 왜 그런 퍼포먼스를 한 이유에 대해 말하자고 그러느냐 나한테 뻗대지만, 너희에게 군대 가라고 한 그 법을 만든 사람들도 남자들이었단다. 여성부가 등 떠밀어서 네가 군대 간 게 아니고, 그 여대 애들이 등을 떠밀어서 네가 군대 간 게 아니고, 네 누나나 네 여친이 등 떠민 것도 당연히 아니잖아. 그리고 너, 군대 제대하고 벌써 두 달인데, 이제 좀 작작좀 하고 살자꾸나. 너 군대 다녀오고 수고했지만, 그렇다고 누나한테 개기고 욕할 권리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건 대체 어느나라의 논리인 거냐. -_-+ 집에서 30분 거리인 공군 부대에서 있으면서 매달 휴가 받아서 나왔으면서도 그러니, 어디 해병대라도 갔으면 아주 누님을 삶아서 회떴겠구나. -_-+ 젠장할.

뭐, 그래도 한 달은 더 참아 줄 겁니다. -_-+ 하지만 전 솔직히 제 남동생이, 직장도 애인도 없이 허송세월하는 패배자들처럼 구는 것이 싫군요. 제가 동생이라 더 성급하게 어서 정신 차려주기를 바라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아는, 뭔가 목표가 있고 꿈이 있던 남자들은 군대 다녀오고 한두달 방황하고는 얼른 제정신 차리더군요. 뭐, 제대 다음날부터 수학책 펴던 선배도 있는걸. 그런 남자들은, 마초가 되기는 해도 여자에게 분노를 돌리는 비겁한 짓은 안 해요. 똑똑한 남자라면 진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잊지 않으니까. 그래도 동생이, 어려서 군대를 다녀와서 그러나보다 하고 참을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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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가 하는 주된 일은

낚시질. 혹은 스팸 뿌리기. 혹은……

이렇게 말하면 갑자기 웬 범죄자의 인생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사실이예요. 심심할 때 마다 홍보를 위해 여기저기 스팸을 뿌리고 있지요.

멀쩡하였던 제 인생이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은, 저와 바꾼 분이 이 곳의 원격센터를 담당하시던 선생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오자마자 바로 원격교육, 연수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여기가 돈은 엄청 발라놓았는데 홍보 부족으로 수강생을 별로 못 모으고 있어서, 대략 적자라는 비극적인 상황이. 그래서 저는.

tcampus.egloos.com 에다가 홍보용 블로그를 개설하고
짬짬이 거기 있는 강의를…… 아, 그래요. 그 강의라는 게 초등학교 선생님이 직무연수(승진할 때 필요한 교육점수 따는 것, 그걸 온라인상에서 교육 다 받고 시험은 전국 11군데 교대에서 볼 수 있지요) 받기 위한 것이라서, 보려고 열심히 보기는 하지만 교육학이나 그런 내용 나오면 전 머리 아프죠. 그래도 교육학 어쩌고 하는 내용 빼면 볼만한 것도 있고. 그걸 봐서 정리해 올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선택의 폭이 조금이나마 넓어지려나?

그거 말고 하는 일은, 학생들 사이버 강좌 같은 것들 관리인데, 전에 계시던 선생님은 동영상 같은 것을 잘 안 올려 주셨다고 하네요. 서버 사정상. 그래서 저는 방법을 바꿨습니다. 하나 정도 백업으로 서버에 올려두고, 실제 서비스하는 동영상 파일은 웹하드 쪽에 올리고 끌어오고 있어요. 그쪽은 대용량 파일 고속전송이 되니까. 그렇지 않아도 버벅거리는 서버에 올려놓는 것 보다는 낫더라고요. 그거 말고는 주로 애들 패스워드 찾아주기;;; 광주교대 학생이 대구교대로 가입하거나 하면 정보 수정하고 교육정보 다시 띄워주기 등등;;;; 잡다한 일들.

어쨌건 강의의 질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까, 주변에 학교 선생님, 특히 초등학교 선생님이 계시면 저런 강의도 있다고 한번 알려주세요. 과학놀이 활동지도라는 과목이, 강의 내용 자체는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그 밖에 다른 추천 과목은 홍보용 이글루에 올려야죠. 여기는 저희집인데, 일까지 끌어들이기는 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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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미영양 보시게)

1987년 6월에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리고 이 얼라는 그때 한문을 스킵하고 신문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건 신문지의 촉감이 좋아서이기도 했다. 어쨌건 애들 다 보는 텔레비전 면 말고, 1면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 뉴스때 나오는 그 데모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고 기억도 하고 있었다. 그때 신문에도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얼라에게는 그만하면 충분할 수도 있었던 정보량이었다.

“너 막 태어났을 때 저기, 전라도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는데.”

그때만 해도 아직 전대머리의 시대.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사람들이 대략 알고는 있으되 집 밖에서 말하면 안되는 그런 시대였다.

“그때 얼마나 흉흉하고 무섭던지 애는 어리지, 밖에 나가는 것도 겁나고 그랬어.”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전쟁이 났다고 하기도 하고, 저렇게 데모를 했다고도 하고. 근데 나중에 들으니까 데모를 크게 했었다나봐.”
“애한테 왜 그런 이야기를 해.”

그러니까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정확하게는 몰라도 사람들이 알고는 있었다는 것은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다. 하여간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한참 하시는데, 그때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

“넌 나중에 대학 가면 데모같은 것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저 사람들이 나쁜 거예요?”
“나쁜 건 아닌데,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되면 안되잖니. 게다가 시위한다고 잡혀가고 하면 나중에 선생님 할 때 곤란하고.”

그때 보고 있던 것이 시위대가 경찰과 싸우다가 학생이 죽고 다치고 하는 기사들. 경찰에 끌려가는 그런 기사들.

“너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저런 일도 별로 없을 테니까 너는 공부나 해.”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공무원스러운;;;;; 이랄까. 그런 느낌의 발언이었지만, 일단 나는 신문 보고 뉴스 보고 하며 나오는 그런 기사들이 무서워서 일단 고개를 끄덕끄덕 했었다. (그리고 그때도 우리 아버지 꿈은 내가 대학 교수나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하여간 내가 아는 것은 그때 그런 시절이래도 사람들이 다 투사요 전사며 민주화를 위해 싸운 열사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주변 어른들은 다들 그런 일에 쉬쉬했고, 그런 일에 어린애가 궁금해하였다고 세상에 학부모 회의에서 우리 엄마한테 “저 녀석은 커서 좋은 대학 가도 데모나 하고 학교 본관에 불이나 지를 것”이라는 식으로 말한 싸가지 없는 선생도 있었다. 와아,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무슨 말을. (그 선생은 결정적으로 우리 엄마가 촌지를 안 갖다줘서 대단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부반장 엄마가 예의라는 게 없다는 식으로 대놓고 애들 앞에서 말하던 인간이니까.)

 

 

 

그러다가 6.29 선언이 나왔다. 그해 겨울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우리 아버지는 영삼을 찍겠다고 하셨는데, 나는 친구들이 노태우가 착하게 생겨서 좋던데 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 DJ는 애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무섭게 생겼다고. 나중에 생각해 보면 노태우가 착하게 생겼을 이유는 없는데, 아마도 우유부단 물태우스럽게 생긴 것을 어린 마음에들 그리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그때 포스터에 박힌 사진으로 마음에 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집에 와서 애들은 노태우가 좋다던데요 하고 말했더니 아버지께서 너는 집에서 누구 찍겠다고 했는지 밖에 나가 떠들지나 마. 라고 하셨다. 뭐, 생각해 보면 그때의 노태우, 영삼, DJ 모두 대통령을 한번씩 해보기는 하였구나. 나는 그때 어렸고, 왜 아버지가 모든 일에 쉬쉬하는지 몰랐다. 아버지가 어려서 전쟁통에 부모님을 모두 잃었고 증조할머니와 어렵게 사셨다는 것은 알았지만, 할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그냥 글만 읽고 농사만 지으며 조용히 사시던 할아버지는 어느날 마을 청년들에게 끌려갔다가 국군에게 죽었는지 인민군에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살해당하셨다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아버지는 친척의 원조로 다닐 수 있었던 대학 시절 그 흔한 마르크스 한 줄 안 읽으셨다는 것도, 그저 하루빨리 교사가 되어 나가는 것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것도. 그렇게 겨우 교사가 되어 나왔더니 술만 마시는 교장에게 한소리 잘못 했다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갈 뻔 하셨다는 것도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어 그 시대 어른들은 다들 민주화를 위해 싸웠을 것이라고 믿는 고등학생도 있는 판에.

내가 그랬다. 나는 효순, 미선이가 죽었을 때 배너는 달았어도 촛불시위는 직장 일로 바빠서 한 번도 안 가봤다고. 그때 사람들도 다를 것은 없다. 그때의 사람들도, 모두가 눈 감은 것 아니었듯이, 또한 모두가 싸운 것도 아니다. 내가 아는 어느 교수님은 80년에 학교가 휴강하자 정말로, 고향에 안 돌아가고 당구장에서 다마수를 올리신 분도 계시고, 공부만 계속하신 분도 계셨으며. 또 다른 어떤 분들은 또, 조용히 숨어서 책만 읽고, 조용히 숨어서 험한 시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계셨다.

그렇다고 그것을 비겁의 시대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역시 인간이 살아가던 시대이고, 투사만의 시대는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 그 사람들의 세대이면서 지금 멀쩡하게 직장생활 하는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역사책에서 볼 수 있는 장렬한 투사로 싸우고 체포되고 고문받던 사람들은 아니니까. (그때 보복처럼 시위하던 사람들이 제대로 취직 풀리지 않아서 대량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다고 하니……)

그냥 우리는,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그때 그 시절을 조용히 살아간 사람이라고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에게는 소위 살아남은 자들의 부끄러움 같은 것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다행히도 그때 그 시절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아직 그런 일에 관심 가질 필요 없을 만큼 어린애였던 사람들은 더더욱, 부끄러움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제 그런 투쟁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에 감사하면 된다. 누구나 투사가 될 필요가 없듯, 그 시대를 싸우며 살아간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그렇게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면 된다. 왜 그때 우리 엄마가 그렇게 말했을까요, 하고 물어 볼 필요 없다. 왜 우리는 그때 아무것도 몰랐을까요, 하고 괴로워할 이유도 없다. 고등학생의 피 끓는 혈기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왜 우리가 그때 태어나서 싸우지 않았을까요 하는 질문은 더더욱이나. 우리가 일제시대에 태어나 만세를 안 불렀다고 우리가 부끄러워 할 필요 없는 것과 다른 이야기다. 시대가 다르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우리가 부끄러워 할 것은 과거 우리가 손 닿을 수 없는 시대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게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을 제대로 살다가, 필요할 때 옳은 쪽에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렇다고 각목에 화염병을 들 필요는 더더욱 없다. 조용히 손을 드는 것이 비겁은 아니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는, 예전의 시대하고는 많이 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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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의 편지

s4200371.JPG

방 정리를 하다가, 예전에 세이군이 군대에서 보냈던 편지 한 통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훈련소에서 보낸 마지막 편지니까, 이등병도 아니고 훈련병의 편지. 죠. 처절하군요.

모처럼 애틋한 마음이 들어 편지를 찬찬히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s4200372.JPG

……그냥 자세한 설명 생략할 테니 직접 읽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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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이 되어버린 서버실 T_T

지난 금요일까지 무사했는데.

월요일, 출근하여 사무실에서 1시간동안 이런저런 QnA 및 민원처리;;; 를 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해 준 다음.

저는 별도로 마련된 원격센터 서버실로 들어갔….. 는데.

“더, 더워!!!!!!”

급히 항온항습계를 들여다보니 기온 44도. 습도 5%. 압력게이지는 빨간 쪽에 가 있고요. 아악! 일단 창문을 열고, 연결된 방문을 열고 저쪽방에 설치된 에어콘을 틀고, 여기 온지 얼마 안 되어서 항온항습계 님의 성격을 잘 모르는 관계로 급히 서버 담당하시는 남선생님께 뛰어갔습니다.

“선생님, 항온항습계 고장난것 같아요. 저기 지금 엄청 더워요!”

월요일같은 날씨에 44도씨 방에 들어가는 것도 고역이지만, 그게 말이 44도씨지 서버 앞은 더 뜨겁습니다.

남선생님과 안선생님이 바닥을 짚어 보시더니, 이게 하단 덕트에서 냉기가 하나도 안 올라오더군요. 그래서 항온항습계 회사에 전화해서 가스 보충하고, 그 사이 저는 1층 가서 선풍기를 얻어다가 서버 옆으로 틀어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버 두 대가 결국 기절하시더군요……

“저 바보라고 찍히는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한숨을 쉬었습니다. 여기 온 지 한달 조금 넘었는데, 벌써 몇 번을 달려간 겁니까.

뭐, 그렇다고는 해도 한번은 방화벽.
또 다른 한 번은 이것이니.
(다른 하나는, 제가 루트로 로그인해서 su 도 안 하고 작업하다가 생긴 일이니 그건 제 탓이죠;;;;; 실수에서 배우는 것도 있고.)

하여간 그래서 저는 어제 퇴근하면서, 서버실 양쪽 방을 열어놓고, 양쪽 모두 에어콘을 약하게 틀어놓고 나왔습니다.

……목요일에 출근했더니 고드름이 얼어 있었더라;;;; 만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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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 관창, 그리고 마쓰이 히데오 송가

예전에 다섯둥이인가 하는 애들도 불렀고, 정광태 씨도 불렀던가 싶은데
화랑 관창 노래가 있었다. 이걸 초등학교때 배웠는데. 노래 가사는 대충 다음과 같다.

관창 관창 관창을 잊지말자

신라화랑중에 으뜸소년
나라위해 용맹떨쳤네
그의 나이 겨우 열여섯
관창을 잊지말자

싸움터에서 죽으리
내 몸은 없어지지만
상대는 엄청난 계백이라
당해낼수 있을까

황산벌의 불꽃튀는
관창과 계백의 혈전
품일장군의 어린아들
관창을 잊지말자

관창 관창 관창을잊지말자

빗발치는 화살을 뚫고
홀로 적진으로 달려가
칼을 휘두르며 외치네
관창이 돌아왔다

싸움터에서 죽으리
몇번을 망설이지만
임전무퇴 화랑정신
영원토록 남으리

어느누구가 욕하랴
관창이 성급했다고
계백장군도 고백하네
관창을 잊지 말자

그리고 다음은, 서정주의 친일행각을 욕할 때 제일 대표적으로 거론하곤 하는 마쓰이 히데오 송가다.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언덕도
산도
뵈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몇천 길의 바다런가

아아 레이테만은
여기서 몇만 리련가……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
그 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띠우고
‘갔다가 오겠습니다’ ..
웃으며 가드니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드니
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져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伍長)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몇천 길의 바다런가

귀 기울이면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레이테만의 파도소리……

 

여기서 일단 저 마쓰이 히데오라 불린 조선 청년이 식민지 청년으로 남의 나라 전쟁에 끌려갔다는 것은 잠시 둘째치고, 그 마쓰이 히데오가 억지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황국에 충성하러” 제 발로 갔다고 하면, 그게 아니면 마쓰이 히데오가 처음부터 일본 청년이었다고 가정하면, 저 노래와 저 시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신라가 이겼으니 화랑 관창이 용맹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화랑이지, 따지고 보면 남의 나라 침략전쟁에 앞장선 하룻강아지요, 결국 알짱거리다 죽음으로써 신라 군사들의 사기를 드높였으니 죽으라고 내보낸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 계백이 그런 적의 소년병, 죽으라고 보낸 것을 우쭐해서 덤벼드는 어린아이가 딱해서 한번은 살려보냈어도, 두 번째는 죽였다 해도 당연한 거잖아. 멀쩡한 자기 나라를 침략해 오는 적군을 막는 것은 그의 의무인것을.

일본이 결국 패망하고 우리가 독립했으니 망정이지, 아니, 그 와중이 되었어도 야스쿠니 신사에는 아직도 총리가 가서 꾸벅꾸벅 절하고 오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만약에 일본이 이겼으면 화랑 관창 노래를 초등학교에서 가르쳐 주었듯이 마쓰이 히데오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까. 관창과 마쓰이 히데오를 동급으로 놓는 것이 우리 정서에야 맞지 않는 일이고, 나도 쓰면서도 참으로 거북하지만, 화랑 관창 노래와 마쓰이 히데오 송가를 나란히 놓고 생각하면 참 우스운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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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플라스틱으로 만들기라도 한 거냐!!!!

http://ohvideo.net/bbs/zboard.php?id=00community&no=10426

아시는 분들은 아십니다만 저 오비디오는 대여점주들 커뮤니티였죠.
블로그도 만들어서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불법 스캔자료들 신고하자고 떠벌이고 다니던 인간입니다.

아니, 물론 불법 스캔자료 신고야 좋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작가들 대여권도 성립되지 못한 나라에서 대여점하는 것은 자랑스러워서 그러고 있는지.
불법 스캔도 아니 하고 대여점도 안 가고 평범하게 책 사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뭐 묻은 게 뭐 묻은 것을 욕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면서 “저런 영삼스러울데가”를 중얼거리게 되죠.

하여간 저기의 플라스틱님;;;; 상당히 이해할 수 없는 경지의 사고를 하고 있네요.

책 사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그쪽의 영업방해를 하는 사회부적응자요 책을 사는 것에서 쾌감을 얻는 정신적 변태라는 식인데.
모든 책 사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라고 하면서 읽다보면 가서 머리카락을 확 뜯어놓고 싶어지는 것은 저 혼자입니까?

잠시 제가 충격먹은 구절 한 줄 인용하죠.

일본에서 유아납치변태고문살인행각으로서 문제가 벌어졌다면
대한민국에서는 피해의식과 선민의식 특정 업계, 즉 대여점에 대한 비방과 모독으로서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거고..
정신적으로 병든 자들은 어느나라에서든 나빠요~…

책 사고, 작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대여점에 대해 말하는 게 유아납치변태고문살인과 비교될만한 일인 줄 오늘 알았네요.
오비디오에 저런 찌질이가 있었다니!!!! (웃고있다)

ps) 다음 글을 보다가, 오덕후가 욕이 아니라면서 하는 주장을 한줄 인용하면.

정확히 말씀드리는데 절대로 욕이 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해자,해독분자,반동분자.. 이런 용어가 욕입니까?
고유명사입니다…

>> 고유명사와 보통명사도 구분 못하는 사람이, 다른 덧글에다가는 상대방의 독해력을 운운하더군요.
송지나 이후로 독해력 타령하는 인간 참 많아졌습니다. 저런.

ps2) 그래서 그 플라스틱 씨가 글을 정리하기를

http://ohvideo.net/bbs/zboard.php?id=00community&no=10439

대략 집나간 어이좀 찾아주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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